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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강서경 : 마치 March

by MJzzang 2024.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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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경은 개인전 [마치 March]를 국제갤러리에서 3월 19일부터 4월 28일까지 개최하고 있습니다. 저는 겨울의 코 끝 시린 바람과 함께 봄의 꽃향기가 살짝 부는 3월에 다녀왔습니다. 국제갤러리와는 첫 전시인 강서경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에 힘껏 발걸음을 내딛으며 다시 한번 자신의 토양을 단단히 다져보고자 하는 기운을 가지고 전시 준비를 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만큼 작가의 작품은 힘있고 또 시간성에 대한 고찰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보는 전시였습니다. 

 

간단히 강서경 작가에 대해 설명하자면, 강서경은 1977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동양화를 공부하여 영국 왕립 미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습니다. 지금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동양화 교수로 재직중이며 리움, 서울시립 북서울 미술관,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2019), 상하이 비엔날레(2018), 등 다양한 전시를 하였으며, 특히 2018년 아트 바젤에서 발로아즈 예술상(Baloise Art Prize)를 수상하였습니다. 작가는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자신의 회화적 언어를 확장해 나가는 작가입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신체 및 개인사에서 뽑은 서사적 요소들과 더불어 한국의 여러 전통적 개념과 방법론을 재해석하여 자신만의 조형 논리로 작품을 풀어나가는 작가입니다. '진정한 풍경'에 대한 현대적 표현방식을 실험하며 지금 사회 풍경 속 개인의 자리를 지속해서 고찰합니다. 이렇듯 전통이라는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시점으로 소환해 구축해낸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작가는 각 작품들로 하여금 서로 유기적으로 헤쳐 모이며 오늘날 개인이 뿌리내릴 수 있는 역사적 축으로서 공간적 서사로 작품을 확장하였습니다.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은 강서경 작가의 주요 개념 '정 井' 과 '모라(Mora)'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작가의 시각적 문법을 관통하는 사각 그리드의 논리는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창안한 유량악보인 '정간보'의 기호를 기반으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바둑판처럼 생긴 정간보 안에서 '우물 정 井'자 모양의 각 칸은 음의 길이와 높이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작가는 음이 연주되는 방식을 소술하는 이 사각의 틀을 개념적으로 번안해 회화로 확장 시킵니다.언어학에서 '모라'는 음절 한 마디보다 짧은 단위를 칭하는데 여기서 강서경 작가는 자신의 회화를 시간을 담는 틀로 활용하여 서사가 축적될 수 있는 시간의 시각화된 단위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모라 - 누하> 연작은 아마도 시간성을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원래 강서경 작가는 캔버스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림을 그리는데, 수평으로 눕힌 캔버스 위로 쌓아 올리는 물감은 캔버스 네 옆면으로 흘러내리기 마련이고 각기 다른 물감이 흘러내린 흔적을 통해 시간이 지나감을 직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캔버스의 옆면은 일찍이 강서경 작가의 회화에 대표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번 <모라 - 누하> 연작은 오랜 시간 캔버스의 면면을 따라 흘러내려 밑으로 떨어진 물감을 모아 종이에 비단의 층위를 덧대어 완성한 작품으로,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물감의 여정을 보여주고 이 작업이 그간 걸어온 시간에 대한 초상이자 개인의 일상 속 시간이 축정해 나가는 역사성에 대한 기록을 표현하는 거라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워스-일> 연작인데요, 실을 꼬아 수놓은 나무 프레임은 생(生)을 뜻하는데 이것은 작가의 예찬이자 여성의 노동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요. 더 나아가 나무 프레임의 둥근 형태는 그 모양으로서 직접적으로 시간의 순환을 상징하는데, 그러한 나무 프레임이 감싸고 있는 반투명한 비단은 새벽과 석양의 하늘빛을 뜻하듯 은은하게 연색된 작품이에요.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석양을 보듯히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모든게 다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강서경 작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시시각각 모양과 방향이 변화하는 작품들 사이로 시간과 세월의 흐릅을 마주하는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강서경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렇한 기분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